새로운 환경이 뇌 회로를 재설정하는 이유
연구 소개
2021년 국제 학술지 『Nature』에 새로운 환경이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회로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펴본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연구 당시 컬럼비아대학교 정신과와 뉴욕주 정신의학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던 박정환(Alan J. Park)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습니다.
논문 제목은 「Reset of hippocampal–prefrontal circuitry facilitates learning」이며, 학습과 기억을 다루는 시스템신경과학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생쥐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했을 때 해마와 전전두피질을 잇는 회로가 어떻게 달라지고, 이러한 변화가 이후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습니다.
연구 동향
새로운 상황에 맞춰 기존의 행동이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인지적 유연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한 번 익힌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기존 규칙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을 배워야 합니다. 이 과정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판단·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전전두피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복측 해마(ventral hippocampus; vHPC)와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을 연결하는 회로는 학습한 정보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회로가 새로운 학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그 단서로 ‘새로움’에 주목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면 뇌가 익숙한 환경에 있을 때와 다른 상태로 바뀌며, 이러한 변화가 이후의 학습을 준비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새로운가
이번 연구의 핵심은 새로운 경험이 기존의 뇌 회로를 곧바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마와 전전두피질 사이의 연결을 일시적으로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진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뒤 복측 해마의 신경 활동이 세타파(theta oscillation; 4~12 Hz)에 맞춰 다시 정렬되고, 복측 해마와 내측 전전두피질 사이의 기능적 연결은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두 영역 사이의 연결이 다시 강화됐습니다. 즉, 새로운 경험이 이미 형성된 회로를 잠시 ‘재설정’해 새로운 학습에 맞게 다시 구성될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경험이 단순히 기억을 하나 더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학습 회로를 보다 유연한 상태로 바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연구 방법론
연구진은 생쥐가 T자형 미로에서 특정 방향을 선택하도록 먼저 학습시켰습니다. 이후에는 기존에 익힌 방향과 반대쪽을 선택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꿨습니다. 기존에 배운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만든 것입니다.
새로운 규칙을 학습하기 약 1시간 전, 한 그룹의 생쥐는 처음 보는 공간에서 10분 동안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이미 익숙한 공간에 노출했습니다. 연구진은 이후 두 그룹이 새로운 규칙을 얼마나 빠르게 배우는지 비교했습니다.
동시에 복측 해마와 내측 전전두피질의 신경 활동을 기록해 두 영역의 활동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또한 광유전학(optogenetics)을 이용해 특정 신경회로의 활동을 조절하고, 도파민 D1 수용체(dopamine D1 receptor; D1R)를 차단하거나 활성화해 새로움에 따른 회로 변화에 도파민 신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환경에 특히 강하게 반응한 해마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이 세포들이 이후의 학습 촉진에 실제로 필요한지도 조사했습니다.
주요 결과
Figure 1. Novelty permits vHPC–mPFC circuit plasticity and mPFC information updating.
새로운 환경을 경험한 생쥐는 익숙한 환경에 있었던 생쥐보다 기존의 선택을 더 빠르게 바꾸고 새로운 규칙을 학습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이후의 학습 능력을 높인 것입니다.
뇌 활동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자 복측 해마의 신경 활동이 세타파에 맞춰 새롭게 정렬됐고, 동시에 복측 해마와 내측 전전두피질 사이의 기능적 연결은 일시적으로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연결 약화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쥐가 새로운 규칙을 학습하기 시작하자 두 영역 사이의 연결은 다시 강화됐습니다. 익숙한 환경에 노출된 생쥐에서는 이러한 재조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도파민 신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D1R의 작용을 차단하자 새로운 환경을 경험했을 때 나타나던 학습 촉진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이 수용체를 자극하면 새로운 환경에 노출됐을 때와 비슷한 회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새로움에 반응했던 복측 해마의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억제했을 때도 새로운 규칙을 빠르게 학습하는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경험에 반응하는 특정 해마 신경세포들이 이후의 학습 준비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연구의 결론과 한계점
이번 연구는 새로운 경험이 기존의 학습 회로를 단순히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와 전전두피질 사이의 연결을 일시적으로 재설정해 이후의 학습에 필요한 가소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미 익힌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경회로가 계속 강하게 유지되는 것보다 새로운 정보에 맞춰 다시 조정될 수 있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이번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환경은 이러한 전환을 촉진하는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회로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된 여러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이용해 굳어진 회로를 보다 유연한 상태로 바꾸는 방법이 향후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생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새로운 장소나 경험을 제공한다고 해서 동일한 뇌 회로 변화와 학습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도파민 D1 수용체가 새로운 환경에 반응해 복측 해마의 신경 활동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하다는 점은 확인됐지만, 이 과정이 정확히 어떤 세포·분자적 경로를 통해 일어나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사람에서도 비슷한 회로 변화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새로운 경험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참고문헌
생물학연구정보센터. (2021, 7월 27일). 「박정환(Alan J. Park)」. 한빛사.
Park, A. J., Harris, A. Z., Martyniuk, K. M., Chang, C.-Y., Abbas, A. I., Lowes, D. C., Kellendonk, C., Gogos, J. A., & Gordon, J. A. (2021). Reset of hippocampal–prefrontal circuitry facilitates learning. Nature, 591(7851), 615–619. https://doi.org/10.1038/s41586-021-03272-1